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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실리테이터의 언어 2
관리자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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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 : NVC (Nonviolent Communication)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워크북을 가지고 연습하고 있다. 인생에 연습이 어디 있나? 모든 게 실전이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그 시간만큼은 말하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공부를 할수록 공통적으로 두 가지 극단적인 현상을 겪게 되어 이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하나는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고 NVC 에 어긋날까 봐 말수가 줄어드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냐’며 NVC 를 그만 두고 싶어 지는 현상이다.


말수를 줄이더라도 NVC 를 쓰는 게 나을까, 아니면 NVC 를 그만 두고 살던 대로 사는 게 나을까? 이것이 선택의 문제라면 맘이 편하겠다. 사실은 독자들은 괜찮은데 나만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안 되니까 어렵다고 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잘 안 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추측도 NVC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NVC 의 적용은 쉽지 않다는 증거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고 영향력을 갖는다. 누구나 말을 하고 산다. 직업이 퍼실리테이터가 아니더라도.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자가격리를 하는 시기이니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는 시간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 시기이다. 그러니 지금 잠시 전문 ‘퍼실리테이터로서’를 벗어나서 ‘퍼실리테이션’ 상황이 아니라 일상의 대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제 우리가 말을 하는 대상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며, 우리가 말을 하는 목적은 필수적인 일상의 소통이며, 말하는 내용은 가장 자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언어이다. ‘아는 것이 힘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금까지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해오던 말들이 NVC 를 공부한 이후에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내가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렇게 폭력적인 대화를 해 왔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 의도도 없었는데 내가 하는 그 일상적인 말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살던 대로 살아질 수 있겠는가? NVC 의 적용이 선택의 문제이겠는가?


말을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몰라도 어차피 말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이라면, 더구나 전문 퍼실리테이터로서 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독자들은 여기에서 서론이 길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가 궁금할 것이다. 


NVC 의 첫 번째 요소는 ‘관찰’이다. 매우 단순하게 들리는 이 말이 NVC 의 첫 관문이며 NVC를 그만 두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NVC에서 말하는 ‘관찰’이란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는 것을 실행하는 것은 너무 어려워 그 다음에 있는 ‘느낌’과 ‘욕구’와 ‘부탁’은  해보지 않아도 힘들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삶의 원리가 그렇듯,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냥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기만 하면 된다. 한 번 해 보자. 다음의 문장은 관찰인가? 평가가 섞인 관찰인가? 어떻게 하면 관찰로 표현되겠는가? 


1) 그는 회의 시간에 내 의견을 묻지 않았다.

2) 그녀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3) 그는 착하다.


1) 관찰, 2) 평가 섞인 관찰, 3) 평가 섞인 관찰 이라고 생각했다면 NVC 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렇게 답하지 않았거나 답하기를 망설였다면 ‘관찰과 평가를 분리’하라는 NVC 의 첫 번째 요소가 왜 첫 번째 관문이 되는지 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로서의 말은 평소의 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우리가 전문 퍼실리테이터로서 말을 할 때도 평가 섞인 관찰을 하고 있을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참가자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을 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로서는 ‘평가가 섞이지 않은 관찰’은 불가능하다. 다만 생각 속에서 평가와 관찰을 분리시켜 관찰로 표현하는 것은 종종 실수는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습과 노력으로 웬만큼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평가 섞인 관찰이 표현될까 봐 조심하느라 차라리 말을 안 하겠는 선택을 할 수는 있으니까. 어떤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있음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가 궁금하다면 위의 1) 2) 3) 문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1) 의 문장은 그냥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2) 의 문장은 ‘너무’ ‘많이’ 등 나의 평가가 섞인 말이 들어 있다. 평가와 관찰을 분리한다면 

2-1) ‘그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60시간 넘게 일했다.’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3) 의 문장은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칭찬의 말인데 여기에도 평가가 섞여 있다. 

3-1) ‘그가 하는 어떠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니 나는 그가 착하다고 생각했다.’ 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 말이 어렵다. 우리 글은 익히기 쉬운데 우리 말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우리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한 마디 한 마디를 검증해 가며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다시 한 번 NVC 의 기본을 상기해 보자.


“NVC는 상대가 스스로 원해서 변화하고 연민으로 반응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NVC 의 목적은 솔직함과 공감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미 가족은 맺어져 있는 관계이다. 기꺼이 연민으로 반응하기를 서로에게 약속한 관계이다. 그런데 이 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고, 가꾸지 않으면 시드는 것은 금방이다. 24시간 1주일 내내 함께 있어 보니 더욱 실감한다. 말 한 마디로 서로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 NVC 를 일상에서 ‘연습’하기에 적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시기가 끝나고 “짠!” 하고 퍼실리테이터로 서게 될 때, 스스로 만족스러운 탁월한 전문가의 모습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한 가지만 해보자. 내가 말할 때는 ‘관찰과 평가를 분리’해서 말해 보자. 남이 말할 때는 ‘관찰과 평가를 분리’해서 들어보자.


끝으로 과제는 전문 퍼실리테이터로서 ‘고객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는 것과 평가 없이 관찰하는 것을 어떻게 연관 지을 것인가’ 이다. 정보를 알면 알수록 편견과 선입견이 생길 것이고, 평가 섞인 관찰을 하면 할수록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반응을 얻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NVC 에서는 그저 ‘한 사람을 전인격적인 존재 그 자체로 보면 된다’고 단순하게 말한다. 인간관계의 황금률 중의 하나인 ‘자신이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의 마음이면 되듯이.  


정혜선 파트너, 인피플 컨설팅 (nowhr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