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칼럼

눈으로 듣는 퍼실리테이터
관리자 2020-07-10

어느덧 코로나가 전세계로 확산된 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반년의 시간동안 우리는 새로운 일상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퍼실리테이터로서도 많은 낯선 일상들을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워크숍에서 가장 새로운 신풍속도는 마스크 착용이 아닐까 싶다. 


마스크 릴레이초상화.jpg


퍼실리테이터 입장에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숨 쉬기가 불편해짐에 따라 워크숍이 끝나고 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스크 착용은 퍼실리테이터에게 체력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워크숍 참석자들의 감정을 읽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마스크로 인해 참석자들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눈과 함께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신체기관인 입이 가려진 상태에서 퍼실리테이터는 참석자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시그널을 절반 밖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새삼 이슬람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퍼실리테이터들이 존경스러워진다.

그렇지만 마스크 착용은 퍼실리테이터에게와는 달리 워크숍 참석자에게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은것 같다.
 “제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제 의견을 이야기할 때 얼굴이 붉어지는데,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이야기하니까 이전보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워크숍 참석자들 중의 어느 한 분의 참여 소감이다.(워크숍 내내 비교적 활발하게 참여했기에 참여 소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분의 성격이 내성적이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워크숍에서 자신의 의견에 대해 질문을 받거나, 반론이 제기되면 아무리 강한 멘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평정심이 흔들리면서 입꼬리와 눈가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스크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준 것이다.


워크숍에서 마스크는 코로나 예방의 목적 이외에도 부가적으로 자신의 방어수단이 되고 있다.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위안부 수요 시위 등 국내외적으로 시위 현장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자신의 신분을 숨김으로써 표현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듯이 워크숍에서 마스크는 참석자들의 솔직한 상호작용을 돕는 장치가 되어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소통이 언어적인 부분이 30%에 그치는데 반해, 비언어적 부분이 70%를 차지한다. 마스크로 인해 오히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참석자의 소감을 들으면서 퍼실리테이터로서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귀로만 듣기(Listen only through ears)’를 하며 30%만 이해했던 것이 아닐까란 자각을 하게 되었다. 마스크 착용으로 숨이 가쁘더라도 퍼실리테이터로서 참석자들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눈으로 듣기(Listen with eyes)’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국 청소년 국가대표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을 했다고 한다. 평지보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대회가 개최되는 만큼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도 높게 대회를 준비함에 힘입어 청소년 국가대표팀은 멕시코 대회에서 탁월한 심폐량을 바탕으로 체력적인 극한을 극복할 수 있었고, 엄청난 관중들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커뮤니케이션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붉은 악마’라는 닉네임과 함께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국제대회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지금은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고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어버리더라도 비언어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는 적기이다. 지금 시간을 잘 활용하기 바란다.


홍순표 부사장, 인피플 컨설팅(hongsoonpyo@inpeople.co.kr)